로고로고

다온테마
로그인 회원가입
  • 열린마당
  • 체험후기
  • 열린마당

    다양한 체험의 추억을 이야기로 만나보세요.

    체험후기

    다양한 체험의 추억을 이야기로 만나보세요.

    오늘 특징주 뉴스 2021-10-28 오후5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바람의우동그릇90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9회   작성일Date 26-05-16 12:12

    본문

    ​패망과 시작​​​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저 돌아온 반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비록 피투성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전사로서 당당히 조상들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음에 만족을 하는 것인지 그의 입술은 알지 못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신라의 군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여지껏 전장에서 젊은 화랑들의 죽음이라면 수도 없이 보아온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그들 가슴속에 반굴의 미소는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저 젊은 나이에, 저리도 행복할까, 그렇게 만족스러웠나,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하게 살다간 자신이?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암흑과도 같은 두려움마저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자신이, 그리도 자랑스러웠을까?​왕실의 일원으로서 핏줄이며 지위이며 다 필요없었단 말인가? 그저 당당할 수 있어서 좋았는가?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피가 끓는다. 허나 두렵다. 너무나 두렵다, 피눈물을 흘리며 같이 죽자며 달려드는 저 미친 적군이 ... 여기서 내가 죽으면 우리 가솔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이할꼬? 가슴을 짓뜯으면서 충격 받아 주저 앉아서 병이라도 들면 우짠다나?​잘려져 피투성이가 된 아이의 목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아버지 김흠순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병사들은 답답한 자신들의 가슴을 쥐어 뜯고 있었다. 그때 톤높은 청년의 목소리가 그들을 깨웠다.​“반굴은 나와 한 집안 친척이요, 사돈이요, 벗이요, 무엇보다 나의 자랑스런 전우였소! 그를 조상들의 전당까지, 그 먼길을 혼자 가도록 둘 수야 없지요. 내가, 이 내가 그의 길동무가 되겠습니다.”(뱅가인 이 온 지우엔 살음고, 새단고, 버디고, 웟쁘다 오느 비엘사란 쌈벋엿제! 그아 옵아틀 블흘라끚엉, 므온비츨 한자 고쁘게 둘 손 시픈기오? 온이, 이 오니 기아 비치벋 도에료캄더.)​모두가 놀라 그 청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좌장군 김품일의 아들 화랑 김관창이었다.​관창이 아버지 품일과, 흠순 그리고 대장군 유신 앞에 섰다.​“출정하겠습니다. 제가 대장군이 젊은날 그러했듯, 반굴이 그러했듯, 적진으로 들어가 계백이의 목가지를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죽어서 나의 벗 반굴과 우리 신라군의 영기가 되어 승리를 돕고 나서, 함께 조상들의 전당에 들겠습니다.”(늘고옛심더. 지오나 디오시온쿤두 졸먼늘 고래햇찰옴, 뱅가이두 고래햇찰옴, 안앎이칸미 털아고 카이파이으 갑이-/ 굽이-갖이알 텬기가 오든, 안임언 디지가 오느 벋 밴가리랑 울 설아큰으 빛-/ 븣-아 도에가 빛올이알 도바고 나소, 캇치 옵아털으 불홀라엔 털아고곳심더.)​모두가 붉고 뜨거워진 눈으로 품일과 유신을 돌아본다.​“장하구나, 하지만 아들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거라, 네가 정말 그리할 수 있겠느냐?”(불아다카이! 헛아 아서이, 또시 안틈 펜달하 봐래이, 느 큼꺼 고리아할 선 잇건나?)​“아버지, 반굴이는 이미 해냈지 않습니까?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가만지켜 봐 주세요.”(아부지, 밴가린 뵌서 해븟다 아입니꺼? 이온두 할 손 잇다카이. 곰아이 봐 지오이소.)​품일이 신음을 토해낸다. 그는 눈물 콧물로 번벅이 된 얼굴로 자식을 붙들어 자신의 품 안에 넣었다.​“아들아, 계백을 꼭 죽이거라.”(아더리, 카이파이 꽉 듹이라.)​‘죽이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너라, 내 아들.’(즤이쁘고 살아소 툴어온나. 반듯허이 살아 툴어온나, 아서이아.)​“하늘 뜻에 따라 될겁니다, 아버지, 너무 소로우어/ 서러버 마세요. 사내가 한 세상 살다보면 결국 다 죽는데, 나중에 어차피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이날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싶진 않아요.”(우란/ 울안 (안울/ 한울) 시키미 딸아 돌께지에, 압우디, 넘어 슬아파/ 스라와 마이소. 산아이 온 미랄 살아쁘다 끄트메 다 디지지, 난주 우때쁘이 디질 늘 되쁠 팀 이아늘 둘러보믄소 늦아도리해쁘고 십진 안쳬.)​관창 또한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간다.​“저는 자랑스런 화랑 용사입니다. 저의 오늘 이 행동이 우리 신라의 백성들에게 용기와 승리를 선사하고, 또한 후세가 저의 이름을 영원토록 기억해 준다면, 사나이로 태어나 한번 제대로 살다 간 것 아니겠어요? 어머니께도 말씀 잘 전해주세요, 죄송하다고 전해주시고,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아버지.”(오나안 비찰 화잇낭 큰아이라하이. 오나르 지오느 이 혼질에 울 설오 봎울덜에 불압캉 빛올을 지오고, 딸아 두에 지오나 일름알 엡아이 섭어니에 지오믄, 산아로 나소 안완 지달오 사라쁘고 곤 꺼 안이갓소? 오무이한트두 왈땀 챨 들이어지오섬아, 므안타 왈해지오이소, 움우이 트알 붙아터입니더, 압우지.)​‘관창이 내 새끼, 내 생명 같은 아들래미, 으흐흐흑!’(콸차이 안 새이, 온 살음 갓찬 아설님이, 으흐흐흑!)​속으로 피를 토하며 통곡하는 품일을 뒤로하고 관창이 흠순과 유신에게 하직 인사를 한다.​“아저씨, 반굴이 너무 걱정마십시오, 제가 잘 보살피면서 함께 가니까요. 대장군, 부디 승리하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조상들의 전당에서 뵙겠습니다.”(아대, 뱅가리 너머 우리오마이소, 오니 트알 텬기가 캇치 곤다아이오. 디오젼큰, 붙여 빝얼하이소. 거믄 됫읍더. 옵애틀 블흘라엔 보이꺼심더.)​이내 화랑관창의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고 쇠부딪히는 소리와 함성소리가 뒤따랐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벌판 반대쪽 적진에서의 무용을 바라보고 있다. 용감하구나. 그리고 정말 멋지구나. 저리도 적진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현란하게 창을 휘두르다니, 저렇게 혼자서 많은 적들을 쓰러뜨리다니, 경험도 많지 않을 나이에!​관창은 용맹했다. 일각을 그렇게 단신으로 싸우고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명장 계백의 젊은 전사들이 호락호락할리 없었으니, 결국 지친 그는 적 장수의 창에 어깨를 맞고 말에서 떨어진다.​신라진영에서는 숨을 죽이고 적 진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한참 후 말등에 몸이 묶인 관창이 거꾸러 앉힌채 신라진영쪽으로 보내졌다.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허나 벌판을 절반쯤 지나온 관창이 온힘을 다해 밧줄을 끊어내더니 돌아앉아 말을 몰고 신라진영으로 달려왔다. 품일이 달려나간다.​“내 아들, 정말 자알 싸워주었다.”(안 아서이, 큰지아 챠르 사우디옷다카이.)​하지만 젊은 관창은 아버지 앞에서 말을 내리지 않고 말했다.​“아버지, 큰칼 한자루 주시오. 다시 가것소.”(압우지, 크닢 한줄르 디오/ 지오이소. 또이 고갓소.)​품일은 말을 잃었다. 멍하니 그렇게 서 있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관창은 신라진영 안으로 말을 달려 재빨리 물로 목을 축이더니 다시 긴 창을 하나 꼬나들고 말위에 올라타 적진을 향해 달렸다.​그렇게 또 다시 고함소리와 쇠부딪히는 소리가 한식경이나 이어졌다. 관창은 정말 용맹하게 싸웠다. 신라의 화랑이란 이름을 황산벌판에 널리 떨쳤다. 적의 이름날린 장수들까지 말에서 떨어뜨린 그였다. 하지만 그의 젊음도 한계가 있었으니, 너무나 지쳐버린 관창은 결국 적 장수의 창에 또다시 관통되면서 말에서 떨어진다.​“아아!”​신라진영에서는 안타까움에 비명소리가 쏟아진다. 병사들은 관창의 말이 벌판을 가로질러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두식경이 지났을 무렵 말 한마리가 백제의 군문을 나선다. 신라진영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실눈을 뜨고 멀리 벌판을 건너오는 관창의 말을 바라보았다.​말 위에는 관창의 몸이 반굴의 몸과 함께 묶여있었다. 하지만 두 청년의 몸은 아무런 힘도 없이 추욱 늘어져 있었다. 말이 벌판을 거짓 다 건너오자 병사들과 장수들이 하나같이 달려나가 맞이한다.​“아아아...”​모두의 눈에 말 안장 왼편에 묶여 있는 소년의 피흐르는 머리가 들어왔다. 이럴수가.. 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 .이럴수가 있는가? 품일은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떨면서 자식의 잘려진 머리를 가슴에 끌어 안았다.​“아아, 이, 이 아이의 얼굴이, 내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마치 살아있는 듯 웃고 있구나. 내 아기야, 내 아들, 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이 아의 울굴이, 온 아으 을크리 아즉 맞이 살은 닷 웃고 있다카이. 온 아이아, 온 아더리, 아아아아아아아!)​정신나간 짐승처럼 울부짖던 품일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장수들과 병사들이 하나같이 달려와 그를 부축한다. 지휘고하를 모두 잊어버린 신라의 장졸들이 뜨거운 눈시울로 관창과 반굴을 맞이했다. 머리가 없는 두 청년의 사늘한 시체를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서로 안아 올려 대장군의 앞으로 데리고 가 나란히 눕혔다. 흠순과 품일은 아이들의 몸을 부둥켜 안고 몸서리를 치며 울부짖었고, 대장군은 말없이 눈물 가득찬 얼굴로 먼 하늘을 올려다 본다.​신라장졸들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꼴이냐? 여기서 적은 수의 적이 겁이 나서, 살려고 어떻게던 한발두발 계속 물러설 생각만 했던 그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저 집에 살아 돌아가서 가족들 얼굴만 보았으면 했던 자신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장군들이 어린 아이들의 주검을 껴안고 정신나간채 온몸을 떨면서 울부짖는 모습이 자신들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다. 그때만큼은 그들이 목잘린 아이들 시체를 껴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아버지들이었다.​“백제인 이 개자슥들...”(봐익지안 이 시앙새이틀...)​“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수만명의 분노에 찬 함성으로 황산벌 전체가 요동쳤다.​“어린아들 둘이서 저리 많이 쳐죽였는데 우리는 대가리는 이리 많아서 도대체 뭐하고 있었노? 가자! 우리가 가서 쟈들 복수해 주자!!”(얼아야덜 두울서 데아리 마이 때리지기쁜데 울은 딕알인 일어이 맨히가 디치 웟히고 잇엇노? 고디아! 울이 고소 뎌아덜 빈디해 지오쿰아!)​이때 신라군 진영의 누군가 진격나팔를 불었다: 뚜우우우우-​“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신라군 총 병력이 백제군을 향해 달려나간다. 대장군의 진격명령도 그들은 듣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가슴이 시키는대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벌판이 신라의 수만명 병력의 발아래 흔들리며 온 천지가 흙먼지로 뒤덮혔다.​그렇게 눈이 뒤집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무지막지한 적을 맞아 계백과 백제의 결사대는 용감히 싸웠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심장이 타올라 터질 같은 수만의 병사들이 5천도 채 남지 않는 적을 덮쳤으니 결과는 뻔했다. 백제의 용맹한 부여전사들은 하나둘씩 신라대군이 휘두르는 분노의 창칼에 뚫리고 잘려서 비참하게 쓰러져갔다.​계백도 검을 들고 열심히 싸웠다. 결코 부끄러운 죽음이 되진 않으리라. 아아, 아이들아, 부인, 드디어 만나러 지금 가오 ... 그렇게 온몸에서 쏟아지는 피로 황산벌판을 적시면서 백제의 영웅 계백과 그의 전사들은 무너져갔다.​하늘이 온통 시뻘건 날이었다............신라의 사기충천한 군사들이 적국의 도성 사비로 진군한다. 수만의 긴 행렬 가운데에 신라 대장군의 깃발이 나부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사비성 인근에 이미 진영을 구축하고 기다리는 당군과 합류할 것이고, 곧바로 사비성 총공격이 시작될 것이다.​“장군, 대장군의 자식들도 조금만 더 자라면 화랑도에 들텐데 그때 다 선봉에 세울겁니까?”(지온그이, 디오지온그서 아덜두 썸안 더 글오믄 후아잇넌도이 털터인디 고틈 다 맏에 서을겟는기오?)​옆에서 보좌하던 장수가 조심스레 유신에게 물어본다. 장군이 한숨을 쉬며 답한다.​“당연히 그리해야지. 나라의 군권을 책임지는 이 사람의 자식인데, 내 자식 감싸고 다른 백성들 자식들 선봉에 내세워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리가 없지 않은가? 국가라는 조직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야 강해지는 법인데, 지도부가 솔선수범치 않으면 대체 누가 식솔들을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려 하겠는가?”(발그이 클레야제. 아라의 쿤흠알 맡아진 이 살음 안데, 온 아아 가마싸고 틀란 밥울털 아덜안 맏이 서웃브리가 아라가 지딜오 굴으골비치 없다 안카나? 아라란 울이/ 물이난 올 온몸이 되쁘야 센이는 빛틴데, 압울이가 믄디 안해쁘믄 다치 느키 그아족덜알 핢한 삼터이 늘보날이오 하것노?)​또한번 긴 한숨을 내뱉은 유신이 말을 이어간다.​“도망치면 내 손으로 그 목숨 거두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백성들이 함께 싸워 지킬 가치가 있는, 공평하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 주어야지. 그걸 위해 우리 다 이렇게 집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죽을지도 모를 전장에서 고생들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돌아나믄 안 소니로 고 삼 가두삐는 마십알 보이솔아도, 보불덜에 캇치 사우가 지클 발가 잇난, 입하고 발으게 돈 아라알 맨들어 울 따름 아게엔덜한터 물이어 지오야제. 골 우이하이 우덜 다 이올이 집이소 문리 떨어지날아 디질지도 말 삼터소 아고니하고 잇는 거 아이가?)​30년을 유신을 따라온 장수들은 단 한번도 그의 지도력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그는 항상 가장 앞에 서 있었고 병사들이 가족들을 보지 못할 때에 그 역시 가족들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부하들을 대하였고 항상 젊은 후배들에게 같은 조언을 주곤했다.​“명심들 하시게나. 사람은 누구나 받은 대로 돌려주고픈 법이니, 내가 다른이들에게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다른이들을 대접해야만 하는 법이라네.”(탄디 색이털 들으레이. 살은건 늬기던 밭안 큼 지오고 시픈기라, 이오니 틀안이덜헌테 바터 시펀 캩치 트란이털투 지오아이 한안 비친거제.)​신라의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서라벌이 아닌 진천 전장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유신이었다. 서로 다른 신분이었던 부모의 사랑 때문에 손가락질과 차별을 받으며 자란 그였기에, 어릴적부터 누구보다 신분을 뛰어넘는 현실적인 공정함에 목을 말라했던 그였고, 빈껍데기 상징이나 타이틀보다는 공정하게 증명된 실[제-능]력을 가장 중시하는 성격의 “지도자”로 성장 할 수 있었다.​마침 때는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한 혼란의 전국시대, 그런 현실적이고 공정했으며 부하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었기에,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그가 전장에 서면 신라군은 항상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그랬기에 항상 승리를 거머쥐었던 것이다.​나라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면, 나라사람들을 무턱대고 떠내밀지 않고, 위험 속에서도 왕족들과 귀족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하나로 뭉쳐 다함께 모은 힘으로 죽기살기로 그 위험 속에 뛰어든다.​작은 신라가 북방기마족들의 맹주 고구려와 남방해상대국 백제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싸워서 성공할 수 있었던 “내부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또한 이러한 지도력과 사회 “내부의 통합”이 훗날 세계제국 당의 군대까지도 패퇴시키고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여름 7월 열사흐레 되던날 의자왕이 당시 자신의 태자였던 큰아들 부여효1와 함께 백강 (금강) 중류에 위치한 왕실의 피난요새 카미날오 (곰[이]나루: 웅진 (熊津))으로 파천하였고, 곧이어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공격이 시작된다.각주 1. 의자왕의 태자가 바뀜: 참고로 그의 첫째 부인과 그 소생들은 왕보다 사비와 웅진 등의 귀족들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둘째부인의 소생인 태자 융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강력한 귀족들의 지지를 받던 효가 대신 태자에 책봉되지 않았을까? 백제 중흥 (中興)의 끝판왕 성명왕이 관산성에서 갑작스레 전사한 이후, 그의 준비되지 않은 후계자들은 하나둘씩 귀족들의 손에 의해 왕위에 올려져야만 했고, 무왕이 즉위할 때까지 왕권은 완전히 귀족들 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 손아귀 안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권의 강화와 나라의 재통합을 실현할 목표로 의자왕의 아버지 서동 (薯童) 무왕은 충을 강조하는 불교를 더욱 장려하며 사비성 바로 옆에 위치한 일-이 (큼[아]-지[오] (금마저): 오늘날 전북 익산시)에 미르-/ 미륵-사 (온세상 또는 신 즉, “미륵”의 사원)를 창건하였고, 동시에 또다른 왕성을 건설하여 독자세력을 구축하면서 귀족들을 통제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앙의 구귀족들 힘을 빼놓는데 실패하면서 오히려 더 큰 반발만 일으킨 이 사업은 결국 지도부를 둘로 나누었고, 이는 훗날 중요한 시기 나라의 힘을 더욱 분열시키고 만다.대국 백제의 왕성 사비의 엄청난 방어시설 규모에도 불구하고 군왕과 중신들이 달아나버린 도성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성곽의 방어가 뚫리면서 화려했던 사비도심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쑥대밭이 되고 만것이다. 수년 전 귀족들의 압박으로 태자자리에서 폐위되어 있던 왕의 셋째아들 부여융이 이내 궁성문을 열고 나가 연합군에 항복하고 만다.​이때 도심을 보호할 나성벽조차 없던 또다른 왕성 일이/ 이리는 이미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궁성을 제외한 모든 것이 무너졌으며, 이때 동방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던 미륵사와 그 세개의 거대한 탑들 역시 불타 버리고 만 것으로 추측된다.​대장군 김유신과 함께 전방에서 신라군을 이끌던 태자법민 (훗날 문무대왕)은 연합군 총사령관 소정방과 함께 조정이 달아나고 비어있는 사비궁의 정전으로 들어가 당상 아래 무릎꿇고 왕실의 큰칼을 바치면서 항복하는 부여융 앞에 선다.​“옥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대백제의 왕권을 상징하는 검이외다. 예를 갖추어 받아주시길 바라오.”(크오시아 난으, 스데모 브리 오오크다라느 오앙켄오 삼불흐르 날다. 오아이 가죽오 몰앗테구레타 이에가오.)​증오와 멸시의 얼굴로 백제의 왕자를 내려다 보던 법민은 융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그를 꾸짖었다.​“그래, 내 이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구나. 네놈의 아비가 십-팔-년 전에 대야성에서, 나의 누이를 살해해 여기 성안 감옥에다 파묻어 버렸다. 그 후로 단 하룻밤을 편히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려왔었는데, 드디어 네놈 목숨이 내 손안에 들어왔구나. 이제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내 누이의 원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수놈아!”(크리, 온 이틈알쁘이 손기버 튼앗디, 이템이 안이 소만 튜어은하다캐. 느이새이 압이 이올-이오디올-하이 아피 타라지엉소, 오니 넌아 지기가 이어 지옹안 감아담우리엔 뭍으쁜 일/ 질/ 짓알 핻제. 거 딜온 혼늘밤알 돌이피어가 잠지하코 몬하고 무신컴에 히둘리온긴디, 딛어 느새이 맏삼이 이오느 손엔 털오앗다카이/ 하이. 이틈이 즈알만 살메 안/ 온우리 뜬 오느 너이 반디 갑아쁠 손 이타 두이구마, 이오 디옥색기!)​법민이 검을 뽑아 들었다. 놀란 소정방이 막아섰지만 20년 가깝게 쌓아두었던 분노로 시뻘거이 달아오른 신라태자의 얼굴에 기가 차서 주춤 뒤로 물러선다.​왕자융을 보필하던 백제의 신하들이 자신의 주군을 지키려 엎드려 울부짖으며 법민 앞을 막아섰지만, 법민은 증오로 가득차 부들부들 떨리는 큰칼을 높이 들어 눈아래 원수를 가차없이 내리칠 태세였다.​‘쯧쯧쯧, 이제 이들도 끝이구나.’​부여융이 김법민의 칼을 받고 죽을 준비를 하던 바로 그때였다.​대장군 안에 드십니다!(크어디온큰 엔 틀디에!)​대장군 김유신이 신라의 장군들을 줄줄이 대동하고 정전으로 들어온다. 살해당한 누이에 대한 불타오르는 복수심에 눈이 멀었던 태자였지만 대장군 앞에서만큼은 주춤한다. 당나라의 대도독 소정방도 사비성 총공격을 시작하기 직전 작은 나라인 신라를 얕보다가 김유신에게 크게 데인 것이 생각이나 순간 찔끔했다.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은 그런 사람이었다.​대장군이 태자를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자신도 태자의 분노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적의 손에 잃어버린 귀여운 어린 조카를 구해주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나고 슬펐던 그런 삼촌의 마음이었다: ‘다 이해한다, 법민아. 하지만 조금만 참자. 여기까지 따라온 수만의 병사들과 고향땅에 있는 백성들이 우리만 바라보고 있다. 다된 일을 우리 개인감정 때문에 망치면 저들은 어쩐단 말이냐? 네 울분을 참지 못하여 큰일을 그르친다면, 법민이 너는 아직 만백성을 책임지고 보살필 대왕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니...’​“태자전하, 대왕-폐하께서 몸소 여기로 오신다는 기별입니다. 백제의 왕 자식놈들과 대야성에서 배신한 검일과 모척을 모조리 우리가 성 안에다 잡아두고 있으니, 기별대로 폐하께서 곧 도착하시면 어찌하라 하실 때까지 참으세요.”(즹윈지온아, 디온오안안-빛야커소 서서러 흐이어 오입단 삭임더. 빅지서 완안 아새이틀캉 타라졍소 틀어뿐 거미르이 모트기 지다 울이 지오엉 엔아다 꼽아두고 읻다카이, 삭아딸오 빛샤커소 컫 닿으시믄 으때해소 하실 틈꺼이 찲으이소.)​가장 기대고 믿는 큰삼촌 김유신의 말에 태자는 칼을 거두고 뒤로 물러선다. 어찌보면 융의 아비 의자 역시 어머니 선화왕후가 신라 진평왕의 둘째딸이였으니, 법민과 유신의 집안과도 인척간이던 터였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 서로를 더 죽이지 못해 원통해하며 이를 갈게 되었던 것이다.​무열왕의 증조부 진흥왕이 나제동맹을 깨뜨리면서 두 나라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고, 또한 그와중에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조부인 세종-가칸 (Gakan/ Gahan) 김무력이 부여백제의 성명왕을 금강 상류에 위치한 관산성 (오늘날 충북 옥천군)에서 전사시킨 후 신라조정이 그 수급을 월성궁궐 북청의 계단 아래 묻어 밟으면서 시작된 두 집안 간의 싸움이었다.​미움이 미움을 낳고 복수가 또다른 복수를 낳으면서 뿌리 깊은 원한이 여지껏 천오백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치욕을 당한 부여융은 김법민과 김유신, 그리고 소정방을 노려보며 말한다.​“나라의 일이 이리 되었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치욕을 거부하랴? 하지만 두고 보아라. 원래 역사란 것은 승자에 의해 쓰여지지만 인간세상은 결국, 승자에 불만을 품고 약자에 동정하기 마련이다. 비록 너희가 지금은 승자이나, 역사는 너희를 결코 고운 눈으로만 봐주지는 않을 것이니. 너희 후손들이 나의 후손들 발아래 무릎을 꿇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후손들이 너희 당과 신라 두 족속들의 도성들을 짓밟고, 그 안에서 너희 족속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거리에 내버리고, 남은 것들은 노예로 삼아 가지고 노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야.”(큰이늬 닛이 고랴 히맡다니 오나가 난이 멘보쿠데 치조크오 거바미스랴? 카시바 므아이토 독케. 콘시 렉이새토 거토아 시오티니 테키 카케룬뎀오 진켄섹아이아 틈알이, 쇼틴이 후속올 맡에 리약티이 토우지오할우 토지엔다. 칼이니 키삼아달가 치오시아닷닥에도, 렉시와 키사마다리오 젯타이 이아샤시이 메밖에리데와 오오메니미라 나이 겉오니. 오마에라 시손달이가 와시느 아시시타 히자 마즉우 히가 카나라즈 크올우거터다. 이쯔까와 오아타시달느 시손가 오미르아 탕또 씰뤄 이 족소크느 키오타이달으 호에테, 소늬 내카데 오메라늬 족소쿠달오 즈따즈따 째끼오리 나게다시, 노코린 몬오닻와 도레이니 시테 코키 쯔카우 히 (h’i)/ 니 (n’i)가 카나라즈 크올우거터다.)​유신은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이 왕자융을 바라보는데, 증오에 찬 부여융의 저주는 계속 이어진다.​“김유신, 귀후비고 똑똑히 들어라! 하늘은 정의롭고 공평한터, 언젠가부터 너희를 너희 후손들까지 외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리 될 것이야!”(진요우씬, 밈이 주의부카쿠 긱해! 쏠아와 세이기테 코헤이나핫, 이티갈아 안타다로 안타늬 시손다리마제 무시히루 카타니 나루달오우. 칸알앗 소 날우 겉어요! 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 )​그렇게 저주를 받은 김유신은 유창한 부여말로 차분하게 답한다.​“그래, 세상일이란 것은 다 그런 것이제. 내가 통일의 대업을 이룰것이기에, 이전에도 진의 시황제와 많은 영웅들이 그러했듯 나또한 그렇게 될 것이야. 특히나 우리가 너희의 바다건너 담로들을 모두 점령하지 못하고 고작 본토밖에 점령할 수 없는 능력이기에, 너희는 계속 살아남아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복수하려 할 것이다. 그보다도, 너의 말이 옳을지도, 우리 후손들에게마저도 나는 악인으로 기억될지도...”(서우, 이오니 것또아 덴부 요우나 므안오데. 오아시가 토오일이느 타이기오오 나시토겔우노데 이젠이모 친느 시호앙디야 오크 에이우달이가 서데아루요우 오내모 서늬요우니 놀우 것또다요. 토커나 오내톨와 안타느 카이가이 다무로탈오아 뎬부 젠료시테 이나이 새제이 혼토밖알에 젠료후리 것또가 됙이나이 노리옥다카라, 오마에토리와 쯔즈이떼 이키노고리 오앗아시타리오 타에지우 고겍이힌아가라 후쿠수히요우또 흘우 만아데알우. 서레요리모, 키사마느 톱아가 타다시이꺼마나, 와시느 시선니맏에모 오나와 아쿠닌데 기오크달에르캄아시레...)​길게 한숨을 내쉬고 신라의 영웅은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굳이 네가 저주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 김유신, 저주를 받는다 해서 숨지도 달아나지도 않는다. 천년 후에도 나와 같이, ‘똑같은 너희’와 싸우고 조국과 백성을 지키려는 이가 나올 것이다. 똑같이 원칙과 솔선으로 백성들을 이끌어 약소한 나라를 구하였으나, 나는 형제나라를 멸망시켰다 욕먹고 그는 원수나라를 이겼다 존경 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중잣대라는 틀에 구애 받지 않고 세상을 균형있고 공평하게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나올때까지 말이다.”(아에테 오마에가 놀오이오 히테 이나쿠떼모 선나 닐이와 익우라데모 오컬우 거토가 됙일운다. 카시, 오라 큼이우진, 노로이오 우케르 것또니 이옷떼 카쿠리모 니게리모 나이. 센넨 고이모 오나 요우나, ‘온아지 안타털’도 타타캇떼 소코쿠또 민나오 맘올오우토흐루 히또가 데테 크올다로우. 요우니 겐소쿠또 솟센덱이니 민나오 마치빗테 이오와이 쿤이오 맡암에타가 고늬오나와 키오타이큰이오 마츰오사셋다 와루굴오 이와도, 칼에와 덱이큰이니 캇타또 손게이 와라에나이 컷토가 오컬아와리 다로우. 니추지타이또이우 오악금이에 토라 오아흐레 지안 세카이오 킨꼬우요쿠 코헤이니 타다시쿠 밀우 것또가 되길우 맨오가 데테콜우맞이 다나.)​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태자법민과 신라의 장수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의 영웅을 바라보지만 유신은 묵묵히 말을 이어갈 뿐이다.​“그 역시 나를 변호하다가 처음에는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믿는다. 배워서 한번 눈을 뜨고 깨닫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류이기 때문이지. 너희가 지금은 이리 욕을 보지만, 그래, 언젠가 너희도 평화로운 번영을 다시 누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더이상 서로 미워하지 말고 너희와 우리 후손들이 함께 그 득을 보았으면 좋겠구나.”(카레모 오아시오 벤고히테이루토주 사이시오니 키구로오 닥상 히나께랴바 나라난다. 카시반 와시 닌겐오 신짓데러. 만안 잇도 메오 아이떼 지츠겐 사릴으또 난이다모 히루 곳토가 되끼룬오가 오레탈 진루이다 칼아지오. 오마에타라 임아와 라이 와루구티오 모라우지마, 소오, 이츠카 오마에털모 헤이와나 한에이오 모우일도 키오지우 사릴우 히가 콜우다로. 소늬따키와 모우 오탁아이 키라이지와 낫 안타틀또 오라탈늬 시손가 이시온이 소늬 이오 돈오심이테 즈오시이나.)​김유신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떨구는 왕자융의 두눈에서 구슬만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곰나루 (오늘날 충남 공주시)로 몽진했던 의자왕마저 부하의 배신으로 연합군 앞에 끌려왔다.​의자왕은 정식으로 항복을 선언하고 때마침 당도한 신라의 무열왕이 주관한 연회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왕과 태자, 그리고 연합군의 대장군들에게 술을 따라 올린다.​이 모습을 본 백제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통곡하지 않은이가 없었다.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해 다툼으로 나라가 분열이 되어 그 꼴이 났는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치 자기들이 “마지막 충신”들이나 되었다는 듯이 통곡을 했다고 한다.​아니면 그토록 멀쩡하다 생각했던 자신들의 나라와 일상이 정말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은 뉘우침과 회한의 통곡이었을까?​하지만 싸움이 거기서 끝나기에, 백제는 “크다 (百) 라 (濟)”라는 이름 그대로 너무나 큰 대-국 (Bæ'g-gæ[ͻ]/ Bi'g-ge[o]: 大-國)이였다. 도성이 함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토 지방의 많은 귀족가문들이 연합하여 부흥군을 결성하였고, 이들은 곧 백제 본토에 주둔 중이던 나당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부흥군은 이듬해 나당연합군으로부터 63개의 성을 도로 빼앗으면서, 결국 제국의 양대수도였던 금마저와 사비가 있는 백강 하류지역 근처까지 진격하기에 이른다.​때마침 여러 담로가 설치되어 백제의 왕족들이 후왕으로 다스리고 있던 와 (倭: 왜) 곳곳에서 징발된 지원군 수만이 바다를 건널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비성이 함락된지 3년째 되던 해, 앞서 왜에서 먼저 건너와 본토에서 부흥연합군을 지휘해오던 의자의 다섯째 왕자 부여풍장 (후지와라캄이탈이) 앞에 드디어 대륙과 열도의 남부여 부흥연합군이 총집결한다.​모두 핏줄로 연결된 이 해-뿌리[오]2의 귀족 (고귀한-무리/ 높은-우리/ 놉-울/ nob-ur =noble) 식구들에게 신라와 당은 자신들의 신성한 모국인 남부여 본토를 침공하여 점령한 침략자들이었다.각주 2. Hae-부려 =Hai-부여 =High-von =Hol-/ Sol-buon =Sir-born =쏠-본 =졸-본 =日-本: 여기서 해-부리오란 북방의 해모수, 해부루, 해유리, 해무휼, 해현 등 해씨 왕실의 부려/ 부여를 말함. 삼국사기에 따르면 졸본에서 시작한 고구려도 시조왕을 제외한 역대 왕들의 성씨가 6대 태조대왕 전까지는 모두 고씨가 아닌 해씨로 기록되어 있음. 고구려의 왕족인 높을 고씨 가문은 결국 해 (Hae/ High: 높이 솟은 태양)의 의미를 한자로 표기하여 바꾼 같은 집안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여하튼 고씨로 왕성이 바뀌고 마치 새 왕조가 열린 듯 왕들의 시호가 시조왕 (태조대왕), 2대왕 (차대왕) 그리고 또 새로운 왕 (신대왕)으로 흘러가는 점이 흥미로움. 백제의 시조왕 (온조대왕) 역시 졸본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졸본은 왕조가 시작되는 태양이 나는 땅을 의미하는 서북방 초원에서 유래한 고대 부여어의 명사형 단어가 지명이 된 또다른 경우일 가능성이 엿보임. 서울, 서라벌, 서벌, 소불, 소비, 사비 등 다양한 한자로 기록된 이 지명들도 실은 모두 수-도 (Sir-vr/ Cab-ur/ Soph-i)라는 뜻의 고대어 명사형 단어들이 지명이 된 것이라 추정됨.남부여 본토의 백제왕성이 침공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왜의 담로후왕들은 빼앗긴 모국의 도성수복을 위해 왜열도의 담로들이 가진 모든것을 동원하여 대규모 군대를 편성, 한반도로 파견하게 된다. 아직까지 새로운 신대륙과도 같았으며, 인구 역시 그리 많지 않던 도래지 왜열도에서 수만의 병력을 모으고 무장시킨다는 것은 당시 동원 가능한 장정들과 자원을 모두 징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일천척의 배와 수만명의 병력이 본토의 부흥군과 합류하면서 드디어 사비로 들어가는 백강 (빅강: 큼강/ 금강)의 입구에서 나당연합함대와 남부여연합함대 사이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남부여 본토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양측 다 지역 해양패권 구도의 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 마지막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다. 훗날 신라의 청해진 역시 이곳에 세워지는 것이 다 이유가 있음이니..어마어마한 접전이 수일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수적으로 유리한 부여연합군이 먼저 승세를 잡는 듯 싶었지만, 이미 전투 전에 벌어진 부여풍장과 다른 왕족들 사이의 알력싸움에서 야기된 내부분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가 나당연합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간다.​그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해양대국으로 군림해온 남부여의 오래된 해전술은 16세기 말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같이 말머리와 창칼이 부딪혀 싸우던 지상전과 비숫했다. 가능한 많은 수로 상대를 몰아붙이면서 적선의 갑판을 먼저 점령하는 쪽이 이기는 전술이었다.​하지만 16세기 말 그 무적함대에 도전하던, 장거리 총통으로 무장한 작은규모의 영국해군과 마찬가지로, 7세기 당시 떠오르는 도전자 신라의 새로운 전술은 남부여의 그것과는 달랐다. 배와 배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과 크기의 장거리 무기를 사용하여, 누가 더 많은 적을 쏘아 넘어뜨리거나 아예 한발 더 나아가 더 많은 적선을 격침시키느냐가 승리의 관건이었다.​이미 이때 신라의 수군은, 김유신 부대가 지상전에서 고구려의 중장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오랫동안 개발해온 다양한 장거리 무기 사용에 익숙해진 새로운 군대였다. 따라서 남부여의 수군은 적과의 거리를 좁혀야만 싸울 수 있었던 반면, 신라군은 적선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직접 조우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적선 위의 적병들을 쓰러뜨리는 것에 적합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었다.3각주 3. 이러한 신라군의 새로운 전술은 훗날 당과의 매소성전투 (675)와 기벌포전투 (676)에서도 신라군이 큰 숫자상의 전력차를 극복하면서 당의 대군을 격파하여 나당전쟁 (Silla-Tang War: 669-676)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당수군의 적절한 풍향계산과 불공격이 효과를 보면서 부여연합함대의 수많은 전선들은 모두 불에 타 가라앉고 말았으니, 그로 인해 배안의 수만명 병사들마저 모두 수장되고 만다. 부여연합군의 배를 모두 집어삼킨 불길이 얼마나 강했는지 밤새도록 온천지가 밝은 대낮과 같았다한다.​결국 대륙부여의 마지막 왕자&quot부여풍장은 나당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당으로 끌려갔다가 훗날 왜열도로 탈출하게 되지만, 자신의 지도력 부족으로 고국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의식에 사로잡혀 옛 기억을 부끄러워하였고, 남은 생을 참회하며 살다간다.다양한 신라 쇠뇌들의 성능을 직접 전장에서 목격한 당군지휘관들은 훗날 이 무기들이 자신들을 위협할 것임을 직감했다.신라군의 장거리 타격 무기들: 고구려의 평양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된지 1년 후인 669년, 당의 조정은 당군을 위한 무기기술의 유출을 거부하던 신라의 무기기술관 구진천을 죽였다. 신라왕 김법민은 신라에 귀순한 고구려 왕족 김안승 (본래 북방의 고씨 또는 연씨 가문 출신)을 고구려왕에 봉하고 북방에서 활동중이던 수만의 고구려유민군과 연합, 이듬해 3월 요동으로 1만의 기동타격군을 급파하여 당시 요동에 주둔 중이던 당의 본진을 선제공격함으로써 7년간 이어진 나당전쟁의 서막을 연다.한편 남은 힘을 모두 잃은 백제부흥군은, 663년에 백강구 전투의 참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보루 주류성 장졸들마저 나당연합군에 투항을 하게된다. 이토록 한많은 패배를 당하고 한반도 백제땅의 남은 귀족들은 이제 모두 신라와 당나라에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이들의 지배를 거부하고 자진해서 고향땅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많은 백제의 귀족가문들이 본토의 고향땅을 떠나 후방안전지대인 왜로 향했고, 그들의 도착과 함께 그곳에 먼저 정착해 살던 백제의 도래인들은 울부짖었다: ​주류마저 떨어졌다고 한다,(지오리우맞에 딸아지엇닷도 잇다,)이제는 더이상 도리가 없다,(임아와 모우 돌이가 나인다,)백제의 이름이 오늘 끊어지게 되었구나,(쿠다라늬 놈아에가 키오우 젣탄 시맛다,)이제 조상들의 무덤은 어찌 다시 찾아가보겠는가?(이마갈아 올압이늬 뭍움오아 다우 모어 메테룬단까?)​큐슈 북쪽 해안에 나당연합군의 추격에 대비한 본토식 대규모 방어성벽축조를 시작으로, 왜열도에서 다시 하나가 된 남부여백제인들은 그 새로운 땅에서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군민들을 이끌어 다시금 살만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개혁을 단행한다.​첫번째는 토지개혁이었다. 본토에서 피난을 간 가족친지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토지를 분배하고, 또한 각 담로 내 관직 수를 늘렸다. 664년 왜의 담로 조정들은 기존에 각각 16등급이던 관작 수를 26등급으로 대폭 늘린다.​그럼에도 힘든 시간이 계속되면서 결국 힘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한 통합조정이 들어서게 되는데, 그리고 몇년 후 670년, 이 통합조정에서는 귀족과 평민, 나이 많은이와 나이 어린이,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질서확립을 골자로 한 새로운 율령을 만들게 된다.​안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물자를 두고 서로 다툴시에 계급이 높고 책임질 일이 더 많은 이에게, 나이가 한살이라도 많은이에게, 그리고 남성에게 우선권[한]을 주었다 (백강에서 대부분의 장정들이 죽어 당장 모든분야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귀한 상황이었음).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시 엄격한 형벌을 가차없이 시행하여 위계질서를 확고히 하였다.​열도에서 다시 시작한 새로운 사회마저 분열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절실함이 엿보이는 이 행보는, 임진왜란에서 인조반정을 거쳐 병자호란이라는 반세기의 대혼란 후 조선사회가 단행한 그 절실한 사회개혁과 똑같았다. 열도에서는 이 뒷걸음질의 고통을 천년이나 더 앞서 겪었던 것이다.​빈손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본토 피난민들마저/ 마데 받아들이려니 저러한 개혁 밖에/ 밖아리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빈궁했고 배고픔에 불평의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러할 때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정치의 기본 (Politics 101)이 바로 민족주의를 고무시키는 일이다.​터질 것 같은 군민들의 분노가 나라 밖 다른곳을 향하도록 외부의 부인할 수 없는 공공의 적 즉, 원수국가에 대한 심리적 원한과 경멸의 마음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더욱더 크게 타오르게 하여, 자신들을 향한 불만의 삿대질이 금방 하나같이 다른곳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중원대륙의 당과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에 대한 적개감을 사람들 안에 더욱더 불짚히는 동시에, 바닥까지 떨어진 사회의 사기를 올리고, 피난 이후 새 땅에 정착하여 지배권을 확립하려는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새로운 민족”의 국가역사편찬 사업에 심혈을 기울인다.​그렇게 7세기말 그들은 고지키 (고사기)라는 새로운 역사책을 편찬하고, 곧이어 가장 유명한 일본의 고대역사서 니혼쇼키 (일본서기)를 편찬하게 된다. 이 역사서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짜여진” 기록을 통해 열도의 부여조정은 그들 지배권의 정당성이 새로운 땅에서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훗날 자신들이 잃어버린 대륙의 옛 땅을 되찾는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였다.​이러한 역사서들의 편찬에 앞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통군주를 부를 텐오 (天王)라는 새로운 호칭을 만들어 냈는데, 오늘날 연음처리로 더 편하게 덴노와 같이 발음되는 이 호칭은 “하늘의 왕”이라는 뜻으로, 천자 (天子) 즉, 하늘의 아들 그리고 천손 (天孫)이라 칭하던 중국의 황제나 신라의 칸들 보다도 자신들의 군주가 더 위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었다.​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후손 알아한/ 얼아칸 (하늘아래 모든 칸들의 우두머리 =왕중의 왕)이 이끄는 천병 (天兵)이라며 이를 사열할 때에 항시 황색깃발을 사용하여 중국과의 대등함을 자랑하던 옛 조국 남부여-크다라 제국의 위상보다 “심리적”으로 한단계 더 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딜도레이터 나아간 행보였다. 중원대륙을 통일한 당나라가 비열하게 신라와 손을 잡고 자신들의 모국을 멸망시켰다 여기고 있던 그들이기에, 그 원수 같은 당이 중앙에서 군림하는 중화세계관을 거부한 것이 어찌 놀랍다 하겠는가?​그리고 마침내, 각각 후왕 (侯王)의 열도담로들이 통합되어 새롭게 본토의 중앙정부로 발전했음을 천명하기 위해 공식국호를 제정하게 되는데, 이는 새롭게 개편된 자신들의 권한을 그들의 뿌리 그리고 정통성과 더욱 잘 일치시켜, 그땅의 모든 인명들이 새로운 정권 아래 하나로 통합되도록 하고자 시행된 것이었다. 이 공식국호제정의 열도 자체기록은 671년에 발견되며, 30년 후인 서기 701년에 편찬이 된 율령집에도 기록되어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문무왕조)와 구당서 (동이열전) 같은 오늘날 잘 알려진 한국과 중국의 공식역사서들 또한 같은 시기 이러한 왜의 국호제정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국제외교에서 사용하게 될 공식적인 “日-本”이란 통일된 국호의 탄생이었다 (태양의-땅, 해가뜨는-곳, 제왕의-땅, 본-토).​한때 본토백제의 귀족집안이었으나 웅진에서 의자왕을 배신하고 사로잡아 당에 투항하였고, 그 대가로 당에서 관작을 받은 예씨집안 군이란 자의 묘지명을 보면 옛 百濟를 日本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그것은 오늘날 百-濟 (일백개의-/ 거대한-해양국가[연합])이라 한문으로 표기하고는 “구다-라”라고 읽어버리는 독특한 일본어 한자읽기 방식4을 보면 이해가 된다. 즉, 百-濟건 日-本이건 전부 “크다-나”와 같이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각주 4. 大-刀라 쓰고 “카타-나”라고 읽는 식이다. “머리장식이 둥근 큰칼”이라하여 환두대도 (換頭大刀)할 때의 대-도 (大-刀)&quot즉, 크다-날 (오늘날 킨-날 또는 큰-칼)이라는 옛 대륙의 말은, 열도어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쿠타-나/ 카타-나와 같이 변형되었다.비록 열도정착 이후 끊임없는 내전과 장군 (쇼군) 가문들의 무인정권 시대가 계속 이어지면서, 왕권이라는 것이 19세기 근대까지도 실제로는 빈껍데기 “상징”이었을 뿐이지만, 자국이 세계질서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군주인 텐오 (天王/ 天皇)가 하늘이 낸 신성한 하늘의 왕, 즉 “신”이며 진정한 “태양”임을 주장하려 한 것5이었다.각주 5. 새나라 일본의 국기는 바로 이 태양의 중요성을 그대로 반영하였는데, 오늘날 한국에서 증오의 대상인 이 욱일[승천]기 (旭日[昇天]旗)는 떠오르는 태양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온세상을 밝힘 /다스림/ 담음을 의미한다. 물론 빛의 혜택은 못받고 부당한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대로 어둠이고,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797년에 편찬된 또다른 일본의 고대역사서 쇼크니혼기 (속일본기)를 읽어보면, 서기 701년에 몬무텐오 (文武天皇, 재위 697-707)의 조정에서 처음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깃발을 사용하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소위 알려진 일본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오늘날 일본의 국기를 사용한 기록이다.​710년에는 오늘날 일본 나라현에 “새로운 도성의 건설”이 시작되었으니, 본토의 수도 사비가 무너진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었다.​재미있는 사실은 그것이 서기 475년 백제의 500년 왕성 칸-조/ 칸-지오/ 한-시온/ 한-성 (왕의-땅/ -세상/ -사회/ -도시 즉, 수-도라는 명사형)이 고구려군에 의해 무너진 후 크다라 (백제)가 걸어간 행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백제는 한성이 함락된 후 반세기&quot동안 왕실 피난처인 카미날오/ 곰나루 (熊津)의 임시수도시절을 거쳐 성명왕 (재위 523-554)이 왕위에 오르고 서기 538년에 나라의 이름을 남쪽의 부려/ 부리오 즉, 남부여로 공식개칭하였고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새수도 사비/ 소비[아] 건설에 나섰더랬다.​또한 황산벌에서 젊은 두 쌈할-앞이 (후아-랑)의 용감무쌍한 희생으로 나라가 무너져 열도로 피난해야 했던 백제의 생존자들은 원수 신라의 그 화랑도를 연구하고 배우려 했다. 수만의 군대가 아닌 이 용맹한 젊은 귀족전사 집단의 코드 “무사도 (武士道)”가 바로 작은 신라가 생존하여 주변의 거대한 열강들을 하나둘씩 무너뜨리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내부요인이라 생각한 것이다.​대륙의 잃어버린 옛땅을 되찾고 원수인 신라와 당나라에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의 열도부여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젊은 무사들을 인정사정없이 훈련시키기 시작하였고, 이들 “쌈할아이”들이 훗날 일본의 자랑과 상징과도 같이 되어버린 “부시도 (武士道)”로 단련된 “싸마라이/ 사무라이” 집단이 된다.​실제로 그들의 적이던 신라의 당시 성공은, 자기손으로 가족들을 베고 황산벌 전장으로 나간 바로 자신들의 영웅 대륙부여-백제의 계백이 먼저 보여준 것과 같은, 적국 두 화랑의 귀족부모들이 또한 황산벌 전장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장과 졸이 모두 한마음이 되도록 이끈 지도자의 “희생”과 “솔선수범”의 정신이었다.​이와 마찬가지로, 당군과의 싸움에서 혼자서 살아돌아온 자기 자식을, 국가의 지도자였기에 자신의 손으로 내쳐야만 했던 늙은아비가 마음의 병을 얻어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아야만 했던, 그러한 고독하고 가슴찢어지는 지도력의 김유신이란 인물이, 데뷔전인 낭비성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고 죽을때까지 실천하며 보여주었던 참된 “희생”의 “솔선수범”이 당연시 되었던 당시 신라사회의 분위기였다.​신라성공의 비밀은 결국, 이러한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내기 위해 오래되어 닫히고 썩어버린 성골사회를 타파한, 당시 진골 “신”계급의 사회“개혁”이 불러온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리고 이 희망의 불이 이끌어낸, 나라가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계급과 상관없이 온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 “사회통합”이었던 것이다.​자세히 들여다 보면, 1) 망한 가야의 왕손으로 경주가 아닌 진천의 전장에서 태어나 신라의 주류사회에 끼기 위해 온-갖/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의 선봉에서 생존하고 자란 당시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성격의 김유신과, 2) 역시 주류사회에서 쫓겨난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골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자란 김춘추와 같은, 즉, 3) 훗날 조선의 이순신과 같은 어린시절을 겪었던 열린 마음의 이들이 “합세”하여 정계의 중추로 부상하면서, 4) 신라는 오랜 구습에 사로잡힌 사회지도자들이 그제껏 생각치도 못했던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진실은 깨닫지 못하고 겉모습만 흉내내어 무사계급만 과다하게 길러낸 일본열도는 천년동안 끊임없는 분열과 내전을 경험해야만 했으며, 드디어 16세기말 전국시대가 끝나고 전 열도가 처음으로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기까지는 단 한번을 강대국의 대열에 끼지 못한다.​그 쓰라린 패망과 이주의 아픔을 바탕으로, 세상의 가장 동쪽 구석에 쳐박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며 통합된 힘을 키우지 못한채 숨죽이고 버텨오던 백제의 후손들은, 언젠가는 힘을 길러 원수를 갚고 대륙의 고향땅을 되찾겠다는 희망을 단 한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어느덧 천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전 일본열도가 그렇게 중국과 한반도를 향한 뿌리깊은 원한과 경쟁의식을 가진 하나의 지도부 아래 통일이 되어가면서, 두 적대 세력간의 또다른 충돌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본토의 조상들이 물려준 뛰어난 제철기술은 일본인들의 단단한 무기제조의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전국시대의 오랜 내전을 겪으며 수많은 전투를 이기고 살아남은 수십만 병사들의 경험은 일본의 강하고 단련된 군대의 근간이 되어주었다. 대륙침공에 대한 열도지도부의 바람과 필요성은 오다노부나가와, 그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통일전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렇게 점차 커져만 가고 있었는데...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